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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서울의 고등학교 교실은 여러 가지가 달랐다. 그중 반 학생들 상당수가 안경을 낀 모습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특히 수업 시간마다 질문도 잘하는 급우들은 모두 안경 낀 학생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렇게 보니 안경 낀 친구들만 눈에 띄었다. 가끔 친구들이 책상에 벗어놓은 안경을 내가 껴보기도 했다. 어지러웠지만 참고 있는 내 모습을 친구들이 보고 “어울린다. 천재처럼 보여”라고 농담할 때 기분이 좋았다.
 
안타깝게도 시력은 정상이었다. 양호실에서 “칠판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하자 그 자리서 시력검사를 해줬 4대시중은행 다. 양호 선생님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밤에 백열등을 당겨 책을 가까이서 눈이 아프도록 읽었다. 며칠 지나 양호실을 다시 찾아갔다. 선생님은 “안경을 껴야겠다”며 병원에서 검사를 다시 받으라고 했다. 시력검사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양호실 시력검사표를 몰래 외웠기 때문이다.
 
“안경을 껴야겠어요. 양호실에서 수원신용회복위원회 시력검사가 안 좋게 나왔어요”라고 말씀드리자 놀란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했다. 안경 끼는 걸 세 번이나 반대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날 때 시력이 나빠진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성근시(假性近視)다. 오랜 시간 한곳에 집중하다가 먼 곳을 볼 때 근육이 쉽게 이완되지 않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근시다”라고 설명했다. 곧 나아질 거라며 “잠을 잘 교보생명텔레마케터 자라”고만 처방했다. 안경 얘기는 없었다. 눈은 점점 나빠졌다. 안경점에 들러 시력검사를 하자 비정상, 안경을 써야 하는 붉은색 표시 숫자나 문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께 말씀드린 지 한참 지나 아버지가 불러 안경은 안 된다며 반대 이유로 든 고사성어가 ‘하극상(下剋上)’이다. 그날 처음 배운 성어다. ‘아 오피스텔실매물 래가 위를 이긴다’라는 말이다. 계급이나 신분이 아래인 사람이 윗사람의 지위와 세력에 대항하고 올라서는 경우를 이른다. 규율을 어기거나 예의를 벗어나는 부당한 방식, 주로 무력을 통해 지배 세력이 뒤바뀌는 것을 이른다. 15~16세기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 센고쿠 시대)에 지방관인 슈고다이[守護代]나 지방 호족 무사 계층인 고쿠진[國人] 등이 세력을 키워 한부모가정 임대주택 영주로 거듭나고 지역 국가를 세우기에 이른, 기존의 지배구조가 뒤바뀐 형태에서 유래된 말이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안경 쓰는 걸 반대한다며 한 첫 마디가 “안경은 장애다”였다. 어머니가 “당신이 의사예요?”라며 안경을 사라고 돈을 내줬다. 바로 안경을 사서 썼지만, 어지러워서 오래 쓰고 있진 못했다. 평상시엔 끼고 다니지 못하고 수업 시간이나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만 꼈다. 안경 끼고 처음 아버지 앞에 나타났을 때 “너한테 해줄 게 이젠 없다”라고 했다. 실제로 그 후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얼마쯤 지나 안경을 쓴 내 모습을 쳐다보며 인용한 고사성어가 ‘소림일지(巢林一枝)’다. 숲에 새집을 지을 때 나뭇가지 하나로 족하다는 뜻이다. 본분에 만족해 더 많은 것을 탐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 분수에 맞게 생활하고 과분하게 바라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원문은 이렇다. “뱁새는 깊은 숲에 둥지를 틀어도 의지하는 것은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고, 두더지는 강물을 마셔도 제 배를 채우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鷦鷯巢於深林 不過一枝. 鼴鼠飮河 不過滿腹].” 평생 잊지 못하고 되뇌는 성어다.
 
그날 아버지는 이 성어를 쓰며 “안경 낀 너는 이제부터 정상인이 아닌 장애인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미 다 가졌던 네가 평생 부족함에 네 마음을 뺏기고 살게 됐다”면서 “너는 시력을 잃은 거보다 더 큰 걸 잃게 됐다”고 말씀을 보충했다. 내 눈을 내가 찌른 꼴이 된 안경을 50년 넘게 쓴 요즈음 들어서는 안경을 쓰지 않아도 잘 보인다. 안과 의사는 “멀리는 흐리고 가까이는 잘 보이는 근시도 나이가 들면서 가까운 것이 흐려지는 노안이 이 근시와 서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게 된다. 멀리 보는 시력과 가까이 보는 시력이 둘 다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가 될 수 있다”며 불편하지 않으면 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요즘 정상인이 되며 안경 사달라고 조르는 자식을 대하는 그날의 낭패를 되새긴다.
 
특히 장난감이 그렇게 많은데도 자꾸만 사달라고 손주들이 떼쓰는 모습을 볼 때 내 아버지가 곤혹스러웠을 순간이 떠오른다. 아이가 물건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이유는 단순히 갖고 싶은 욕구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아이의 발달 단계와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고 한다. 아동학자들은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떼를 쓰는 행동으로 욕구를 표현한다. 부모에게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나 불안하거나 긴장될 때 익숙한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안정감을 얻으려고 떼를 쓴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기를 수 있는 첫 번째 인성으로 학자들은 자기 조절력을 꼽는다. 아이가 원하는 걸 당장 얻지 않더라도 참는 힘을 키워줄 것을 강조한다. 놀이와 일상에서 ‘기다림’을 연습시키는 일도 주효하다고 귀띔한다. 원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조르는 건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지만, 그런 인성이 자리 잡지 못하면 고등학교 들어가서도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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