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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합니다. 갚지 못하고 세상 떠납니다.” 지난 28일 별세한 국내 1세대 화가 한인현 화백이 병상에서 원주 출신 이계진 전 국회의원(전 아나운서 클럽 회장)에게 남긴 말이다. 이 전 의원은 고인의 예술세계를 알아 본 최대 후원자였다. 이계진 전 국회의원이 세상 밖으로 처음 소개해 알린 ‘바보 화가’ 한인현 화백이 지난 28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함남 함주 출신으로 빈센트 반 고흐 그림에 감명받아 그림을 시작한 고인은 남북한 통틀어 첫 예술학교인 흥남문화학원(고교)과 해주예술 보험모집인 전문학교(대학)에서 공부한 우리나라 1세대 화가다. 한국전쟁 때 홀로 월남한 후 탁월한 데셍, 고유한 화풍으로 눈길을 끌면서도 기성 화단과는 거리를 뒀다. 전시회 도록 이력에 ‘비미술협회원’이라는 문구를 넣을 정도였다. 70세가 되어서야 고인이 대중에 알려진 계기는 이계진 전 의원이 1996년 쓴 책 ‘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다. 고인의 예술혼에 일찌감치 아이온직장인 주목한 이 전 의원은 유럽 스케치 여행을 지원할 정도로 기꺼이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29일 한 화백 빈소에서 본지와 통화한 이 전 의원은 “이렇게 단기연체기록 좋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는데 처세를 잘하는 사람들의 그림만 알려지고 진짜 예술작품은 왜 알려지지 않는지 의문이었다”고 했다. 이후 언론사 등에 직접 소개를 부탁하러 다녔지만 “누군지 잘 모르겠다”는 답만 받아야 했던 그는 직접 책을 써서 한 화백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이후 찾아간 곳이 고향 원주에서 출판하던 인기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 원주 출신 금융기관가중평균금리 이영혜 대표가 이끄는 이 잡지에 연재 지면을 달라고 부탁했고, 2년간 글을 썼다. 이 글을 모아 단행본을 내자 그제서야 미술계와 사람들이 “이런 분이 있었느냐”며 한 화백을 찾기 시작했다.






▲ 한인현 작 ‘기 수원개인회생 다림’





평생 고흐를 동경한 서양화가임에도 그의 작품을 직접 본 적이 없었던 고인을 위해 자비를 들여 함께 유럽 스케치 여행을 두 차례 떠나기도 했다. 그가 인기 아나운서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쁠 시기였다. 이 전 의원은 “(한 화백의) 원을 풀어드리고 싶었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을 다녀오며 피카소 작품 등을 함께 봤다”며 “일화를 취재해 모으고 삶의 모습 중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썼다”고 밝혔다.






유럽 스케치 여행을 함께 떠난 이계진 전 국회의원(왼쪽)과 고 한인현 화백. 이계진 전 의원 제공.





고인은 셀 수 없을 정도의 그림을 남길만큼 작업량이 많았지만, 작품을 자식처럼 여겨 판매를 극도로 꺼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잡지와 단행본 삽화 등을 그리며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예술에 매진했다. 지난해 10월에도 개인전을 열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고단함, 그 속에서도 살아있는 사랑의 마음을 내보였다. 이 전 의원은 한 화백에 대해 “티없이 맑은 분이었다. 그래서 ‘바보 화가’라는 별칭을 붙여드렸다. 절망적 상태의 한 분을 구해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고인은 생전 꽃을 그리지 않았다. 살아있는 그 자체로 예쁜 꽃을 그리기 보다는 삶의 이야기를 그려 감동을 줘야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며 “이처럼 모든 예술인들이 ‘상품’이 아닌 ‘작품’을 그려서 관객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선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계진 전 국회의원이 1996년 펴낸 책 ‘이계진이 쓴 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 표지. 이 책을 통해 고 한인현 화백은 70세가 넘어 화단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인은 2003년 펴낸 자신의 저서에 “내가 죽거든 스케치북과 4B연필을 관 속에 많이 넣어달라”는 말을 남겼는데, 유족은 “책에 쓴대로 해드릴 생각”이라고 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30일이다. 김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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