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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 기자]
지난 2023년,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최초로 동양인 성상이 세워졌다. 갓을 쓰고 있는 성상의 주인공은 한국의 첫 사제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다. 200년이 지난 지금 여기,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신부가 있다. 김대건 베드로 신부다. 원리금균등상환 천주교 신자인 그의 부모님께서 사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준 이름이었다. 현재 김대건 베드로 신부는 대전가톨릭대학교 사무처장이자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이고,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도 겸직하고 있다.
맡은 직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살림을 꾸리는 일이다. 대학교와 협동조합의 살림을 목욕손타올 살뜰히 돌보고 책임진다. 둘은 생태환경 이야기를 하는 일이다.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으로서는 생태환경운동 현장에 미사를 가고, 협동조합 위원장으로서는 생태 문제를 들여다 봐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과묵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탓에 한때는 "무섭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던 김대건 베드로 신부는 이제 살림도 맡고 생태 이야기도 하며 분주하게 돌 금리계산법 아다닌다.

"현장에 가서 활동가들 얘기 들어보면 오히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인데도 더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고 투신하는 걸 보게 되거든요. 미사 연대가 원래는 활동가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건데, 오히려 제가 힘을 더 얻고 오는 체험을 많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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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가톨릭대학교 앞에 선 김대건 베드로 신부


ⓒ 김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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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떻게 본래 성격과 정반대되는 일을 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것들을 소화하고 있을까?

"이렇게 (맡고 있는 직책을) 말하면 많은 분이 제가 능력이 뛰어난 줄 아십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 능력보다는 오히려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랍니다. 그렇다 보니 업무 과다로 지치고 힘들 때도 있어요. 그래도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김대건 베드로 신부의 비법이다. 그는 매일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했단다. 그것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장하게" 했다. 덕분에 이제는 무섭다는 말보다 "귀엽다!", "웃는 얼굴이 예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김대건 베드로 신부는 사람을 만나는 법이나 웃는 법을 익힌 것처럼 신앙 공동체에서 생태 문제를 만난다. 때로 지난한 과정일지라도, 아무리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마음만은 기도하는 것처럼 "비장하게", 그러나 표정만은 예쁘게 말이다.
낮은 곳에서 함께하는 사제
김대건 베드로 신부가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코로나가 터진 후부터였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모든 것이 멈추고 격리되었던 시기에 성당 역시 문을 닫아야 했다. 미사가 전면 중단된 것은 천주교 대전교구가 창설된 1948년 이래로 처음이었다.
당시 김대건 베드로 신부는 대전의 한 성당에서 주임 신부로 근무하고 있었다. 코로나 전까지 그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당시 성당에서 매달 발간되던 소식지를 엿보면 알 수 있다. 한 초등학생 신자가 그린 4컷 만화 속에서 신자들은 사무실, 카페, 성당 어디를 가도 김대건 베드로 신부를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는 성당의 곳곳에서 온갖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진 뒤에 그는 이전과 같은 장소에 있었음에도 더 이상 신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즈음, 대전교구의 생태환경위원회에서 제1회 가톨릭 기후 학교를 열었다.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다면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교육에,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다면 그만한 시간과 관심을 가질 수 없었을지도 모를 김대건 베드로 신부가 참석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그냥 보통의 생태 감수성을 갖고 있었다가, 이때야 비로소 이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제 안에 울림이 있었어요. 앞으로 교회가 가야 할 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요."
가톨릭 기후 학교에서 교육을 듣고 마음이 동했던 사람들은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각자가 속한 교회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의 확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4년부터 김대건 베드로 신부는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점점 확신이 드는 거죠. 지구상의 인간이 생존하려면 다른 피조물들과 함께 공존하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명확하니까요. 회칙에서도 설명하는데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해요. 하느님이 내가 하는 일 안에서 일체를 이루는 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나는 연결되어 있다고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훨씬 더 체감하게 된 거죠. 그전까지는 '진짜 그런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결국 인간이 동물의 살 자리를 다 빼앗아버려서 인간이 코로나에 감염된 거잖아요. 생명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죽어가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는 거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됐어요."

그의 꿈은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뒤로부터 지금까지, 줄곧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제"였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과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  세종보 재가동 중단 및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미사를 보는 김대건 베드로 신부


ⓒ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처음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던 때, 다단계에 빠져 아버지 몰래 부었던 어머니의 곗돈을 날렸던 때, 그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제품을 받던 때, 중증 근무력증으로 중환자실에서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 나갔을 때, 그는 육신의 고통을 겪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투병을 끝내고 처음 신부가 되었을 때, 퇴직하신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에서 장례 미사를 달에 한 번 이상씩 봤을 때, 그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그는 인간 너머의 가난한 이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떤 피조물들은 말조차 못 하는 거죠. "나 아프다", "힘들다", "살고 싶다"고 말이에요. 그런 생명체들을 아끼고 돌보는 것이 결국엔 나를 돌보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가난하고 힘겨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리는가 생각하다 보면 산업 구조를 보게 되는 것처럼, 생명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죽어가는 것도 그런 것과 다 연결되어있다는 거죠."
어쩌면 김대건 베드로 신부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그가 만나게 된 이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다단계로 곗돈을 잃었을 때, 그는 복수하거나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드는 대신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기로 했다. 아팠을 때도, 죽기 직전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그는 남 탓을 하거나 그곳을 재빨리 벗어나려고 하는 대신 그와 같은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 옆에 남기로 했다. 이미 그래왔기 때문에 김대건 베드로 신부는 코로나가 터졌을 때도 땅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내려가 생존이 어려운 이들과 함께 살 방법을 찾아보기로 한 게 아닐까.
거대한 문제에 압도당하지 않는 법
김대건 베드로 신부가 대전교구 위원장으로 있는 생태환경위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과 함께 전 세계에 꾸려진 위원회이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였다. 교황은 천주교 공동체를 위해 여러 가지 문헌을 발표하는데, 그중에서 회칙은 전 세계 천주교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교황이 직접 전하는 지침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25년 4월에 선종했지만, 역대 교황의 회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전까지 회칙은 주로 다른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춘 사회 문제들을 다뤄왔다. 그러나 <찬미받으소서>에는 지구를 '공동의 집'으로 부르며, 지구가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생태적인 접근을 한 첫 번째 회칙이다.
"<찬미받으소서>은 총 6장으로 되어 있어요. 2장에서는 성경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해요.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잘 다스리고 돌보라고 얘기했는데, 그걸 착취하고 훼손하고 파괴하는 걸로 생각해 왔다는 거죠. 3장에서는 가장 큰 원인으로 산업혁명 이후에 기술 지배 패러다임과 인간중심주의에 갇혀있게 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요.

마지막 6장은 생태 교육과 영성을 다루는데요. 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히고, 인식 전환뿐만 아니라 지속되기 위해서는 영성, 그러니까 기도가 동반돼야 된다는 얘기를 하시죠."










▲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일상에서의 실천이다. 김대건 베드로 신부는 미사를 나갈 때마다 이 회칙을 소개한다. 매일 이 회칙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와닿았던 것들을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특히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서 조합 홍보를 위해 대전교구의 성당에 미사를 하러 가서는 더 그렇다.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은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해서 탄소를 줄이고, 탄소 중립을 구현한 성당에 인증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작년에 처음으로 갈마동 성당이 탄소중립성당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때로는 호응이 없기도 하고, 왜 교회가 그런 걸 자꾸 하냐는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의 변화도, 세상의 변화도 너무 더디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진짜 30분 동안 죽어라 얘기를 해도 '신부님 고생하시는데, 내가 한 구좌 기부할게요.' 이러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한 성당에서 천만 원 모으기도 쉽지 않았어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계속 쏟아부어도 뭐가 나오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러나 당연하게도, 김대건 베드로 신부에게 생태환경 문제에 힘쓰는 일은 신앙 행위이다. 앞에 나서는 걸 잘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뒤에서 서포트하는 걸 더 편안하게 생각하는 편임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일이 신앙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하루 일과 중 3시간의 기도 시간은 그가 지치지 않고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지치고 힘들면 나 혼자 이런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하거든요. 그런데 매일매일 기도하는 시간이 내가 활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다는 걸 많이 느끼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내가 할 수 없는 건 하느님께 맡기자고 생각해요."
김대건 베드로 신부는 자신이 "스스로가 깨달아 삶이 바뀔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협동조합을 위해 하지 않는 일과 하는 일은 꽤 분명하다. 미사를 마친 뒤, 그 자리에서 바로 조합원 가입 신청서를 돌리지 않는다. 이 일에 마음이 동해서 신청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대신 새로 가입한 조합원에게는 직접 연주한 오카리나 곡과 직접 만든 팔찌 묵주를 선물한다. 조합원들의 영명축일(본인의 세례명을 기념하는 축일)에는 축하 문자도 보낸다. 모두 투병 후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시작한 일이다.
인상이 무섭다는 소리를 듣던 그가 비장하게 웃는 얼굴을 연습한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던 그가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하나하나 쌓아온 노하우다. 덕분에 지금은 신규 출자액보다도 증좌된 금액이 비교도 안 되게 크다. 증좌액이 매년 늘어난 덕분에 협동조합의 규모 자체도 많이 커졌다. 5년 전, 그가 이사장을 시작했을 때 101명으로 시작되었던 조합원이 2025년 5월 기준으로 2200명을 넘겼고, 출자금은 6050만 원에서 26억 이상으로 늘었으며 태양광 발전소는 35호까지 설치 중이다. 지구의 위기라는 거대한 문제에 압도당하는 대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신앙 행위를 해나가는 것이 김대건 베드로 신부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