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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사는 유수진(36)·윤성훈(36) 부부는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하자, 신혼여행 경비로 모아둔 돈에서 300만원을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100만원은 여객기 참사 지원에 쓰였고, 200만원은 이웃 돕기에 배분됐다.
작년 3월 결혼한 부부는 당초 유럽 신혼여행을 꿈꿨다. 하지만 신부 유씨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어 결혼 직후 신혼여행을 떠날 수 없었고, 대신 겨울로 미뤘다고 한다. 여행 계획을 세우던 중 참사가 발생하자 신혼여행 경비로 모아뒀던 돈 일부를 기부한 것이다. 이후 부부는 신혼여행 행선지를 일본 후쿠오카로 바꿨다. 비행기 대신 부산에서 배를 타고 방빼기 갔고, 4박 5일 여행에 총 200만원 남짓 썼다.
남편 윤씨는 임기제 공무원이다. 인천의 16평 아파트 전세를 1억원대 중반에 구한 부부에게 300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었다. 윤씨는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다녀왔다 해도 결국은 잠깐이었을 것”이라며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해서 행복하다”고 했다. 유씨는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 스마트론 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어디에서든 남편과 함께 있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소신 있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허례허식보다 가치를 중시하는 MZ세대 별내신도시 미분양 (1980년대 초~2010년대 초 출생자)의 특징이 ‘우리만의 신혼여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호화스러운 곳은 아니었지만, 더없이 행복한 신혼여행이었다”고 했다.
장보연(31)·김주형(28) 부부는 작년 5월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신혼여행으로 자전거 국토 종주를 떠났다. 대구에서 부산까지, 부산에서 인천까지 4박 5일 동안 청약제도 변경 자전거를 타고 633km를 달렸다. 남편 김씨는 “아내가 ‘결혼하고 자전거 여행 한번 해볼까’라고 제안했다”고 했다.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아기도 낳고 미래를 준비하려면 신혼여행에 많은 돈을 쓰기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내는 중고로 산 원피스를 입고, 남편은 셔츠에 보타이를 매고 자전거를 탔다. 둘의 옷에는 친구들이 “무사히 다녀오라 육아비 ”며 적어준 응원 문구가 빼곡했다. 게스트하우스 등에 묵고, 도중에 마주친 식당에서 식사했는데 총 50만원 정도 들었다. 부부는 “신혼여행이라고 하니 어디서든 반겨줬다”며 “특이한 옷차림을 보고 ‘멋있다’며 식당 사장님이 음료수를 챙겨주는 등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고 했다. 아내 장씨는 “그동안 바빠서 우리나라의 풍경을 즐기지 못했는데, 둘만의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신혼여행이었다”고 했다.
김은경(35)·장순철(35) 부부는 인생에서 꿈꿔왔던 6개월짜리 미국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미 서부를 종단하는 초장거리 하이킹(Pacific Crest Trail·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에 도전한 것이다. 미 서남단 캘리포니아주 멕시코와의 국경에서 서북단 워싱턴주 캐나다와의 국경까지 약 4265km를 종단하며 시에라네바다·캐스케이드 산맥을 지나는 경로. 연애 시절 도전하려 했지만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포기했었다. 둘이 함께 울릉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어 6개월 신혼여행이 가능했다.
결혼식을 올린 지 반년 지난 작년 4월 여정에 나섰다. 하이킹 내내 신랑 장씨는 나비넥타이를 맸고, 신부 김씨는 배낭에 웨딩드레스용 베일을 달았다. 도중에 만난 미국인들은 “두 사람이 이 길을 함께 완주하면 평생, 끝까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부 김씨는 “시에라네바다산맥 근처를 지날 때 음식이 부족했는데 남편이 사탕을 양보해 줘 정말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며 “혼자라면 못 버텼을 여정이었는데 남편과 함께여서 가능했다”고 했다. 그는 “‘공장형 신혼여행’이 아닌 우리만의 색깔이 들어간 재미있는 여행이어서 좋았다”고 했다.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한꺼번에 해결한 부부도 있다. 미 동부 메릴랜드주에 사는 교포 1.5세 이의성(36)씨와 한국인 강지현(32)씨 부부는 지난달 미 하와이에서 양국 가족들을 초청해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신혼여행을 갈음했다. 미 군의관인 이씨와 한국에서 리듬체조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강씨는 2023년 2월 양가 친척들 소개로 알게 됐다. 6개월간 온라인 연애를 하다 그해 8월 이씨의 하와이 출장을 계기로 하와이에서 처음 얼굴을 봤다. 둘은 알게 된 지 1년 만인 지난해 2월 미국에서 예식은 뒤로 미룬 채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이로부터 1년여 만인 지난달 하와이 여행 겸 결혼식에는 부부, 양가 부모, 신부 남동생, 주례를 봐준 신랑 친구 등 총 8명이 참석했다. 6박 7일간 모두가 머물 수 있는 해변가 펜션을 빌려, 펜션 마당에서 식을 올렸다. 양가 부모가 의자를 옮기고 장식을 배치해 식장을 꾸몄다. 신부는 매릴랜드 집 근처 옷 가게에서 300달러를 주고 웨딩드레스를 사 왔다. 상견례, 결혼식, 신혼여행, 가족여행을 한꺼번에 한 셈이다. 8명의 비행기 푯값까지 포함해 총 2000만원 남짓 들었다. 부부가 낸 하와이 신혼여행 아이디어에 양가 부모는 “허례허식 없이 너희들이 온전히 축하받을 수 있는 결혼식”이라며 반겼다고 한다. 신랑 이씨도 “인생에 더없는 추억이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