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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사이트 ∋ 2013바다이야기 ∋㎴ 22.rqg933.top ┿서울방송고 학생들이 서울 성동구의 학교 녹음실에서 새로 만든 교가를 함께 부르고 있다. 유대근 기자


지난해 3월 부임한 강상욱(58) 서울방송고 교장은 악보에 적힌 학교 교가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수리산 큰 터전 높푸른 기상'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데,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학교 주변엔 수리산이라는 지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전신인 동호공고가 1992년 개교할 때 만들어진 노래인 터라 마땅히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이 학교 2학년인 손예진(16·미디어콘텐츠과)양도 교가를 부를 때마다 갑갑함을 느꼈다. '나의 조국 앞날은 밝다' 같은 노랫말이 요즘 10대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손양은 넥스턴 주식
"입학식 등 큰 행사 때 가끔 교가를 부르는데 가사가 너무 '올드'(old)했다"며 "솔직히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으니 공동체 의식이 생길 리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 학교 교가는 죄가 없다. 전통적인 '공식'대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비장하고 진지한 멜로디에, 산과 강 같은 자연 지형이 등장하는 가사를 붙인 노래는 전국 초중고교에서 흔한양이엔지 주식
히 찾아볼 수 있다. 예전처럼 교가를 아침 조회나 운동회 등 때 부르는 것도 아닌데다 학교 생활과 동떨어진 가사인 탓에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가 돼버렸다.
이 학교는 연예인이나 방송 스태프 등을 꿈꾸는 아이들이 주로 다닌다. 톡톡 튀는 창의력으로 승부해야 할 학생들에게 낡은 교가는 맞지 않았다. 강 교장이 지난해 4월 '깃발'을 들었다.강한주식

"방송고답게 교가를 바꿉시다."

함께 만든 교가, '떼창'으로 부르다
새 교가를 만드는 임무는 17년차인 여지화(43) 교사가 맡았다. 여 교사는 디자인을 전공한 까닭에 처음에는 난감했다. 다행히 이 학교에는 끼 넘치는 제자들이 많았다. 학생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가사를 쓸 적임자현대디지탈텍 주식
를 찾았다. 다큐멘터리 작가를 꿈꾸는 김민수(18·미디어콘텐츠과)군이었다. 그는 친구가 만든 단편영화에 들어간 노래를 작사한 경험이 있었다. 선생님의 제안에 흔쾌히 "가사를 써보겠다"고 답했다. 김군이 노랫말의 틀을 잡았고, 후렴구는 손양 등 6명이 '학교와 나'를 주제로 쓴 에세이 내용을 조합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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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방송고 학생들이 작사한 새 교가의 악보. 서울방송고 제공


아이들이 쓴 교가의 가사는 '맛'이 달랐다. 다채로운 인력의 팀플레이가 중요한 영상 콘텐츠 제작 과정의 특성을 살려 '꿈과 화합'을 가사를 관통하는 열쇳말로 삼았다. 또, 영화나 방송 용어들을 섞어 학생들이 친근하게 느끼도록 했다. '파도가 전한 하모니' '주파수라도 함께 맞춰나가자' '렌즈에 담았던 우리 그 순간들' '소중했던 시나리오를 써내려가' 같은 노랫말은 학생들의 공감을 샀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김승주 작곡가가 재능기부로 만들어준 밴드풍의 곡에 가사를 입혀 올해 초 노래를 완성했다.
새 교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모아내는 힘이 있었다. 여 교사는 "지난 1학기에 바뀐 교가를 공식 도입하며 아이들과 '떼창'(함께 부르는 것) 해봤다"며 "'뮤직 비디오는 안 찍느냐'거나 '코인 노래방에서 마지막 곡으로 부를 수 있도록 음원을 등록해달라'는 요청이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강 교장은 "아이들이 직접 참여해 새 교가를 만들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면서 "단순히 교가의 멜로디와 가사만 바꾼 게 아니라 우리 학교의 진짜 교육 철학을 담았다는 점이 의미있다"고 자평했다.



강상욱(앞줄 왼쪽 두 번째) 서울방송고 교장과 여지화(앞줄 맨 오른쪽) 교사, 김민수(앞줄 오른쪽 두 번째)군이 지난 3월 25일 새 교가를 작곡해 준 김승주(앞줄 맨 왼쪽) 작곡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방송고 제공



'성 역할 강요' 여고 교가 노랫말 바꾸기도
서울방송고의 '도전'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권위주의적 가사와 예스러운 멜로디를 버리고 교가를 바꾸는 학교가 제법 있다. 경남 사천의 남양초등학교는 2020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교가의 가사를 바꿨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사천해전 때 거북선을 투입했던 역사를 근거로 가사에 '충무공 피흘린 앞바다' ' '피흘린, 일천건아' 같은 표현을 담았는데, 자극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학생들은 노랫말을 '충무공 지켜낸 앞바다' '이 고장 꿈과 희망 배움의 보금자리'로 바꿨다.
인천 강화여고는 1955년 개교 때부터 불러온 교가 후렴부의 '여자다워라'라는 가사가 성 역할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자 2016년 '지혜로워라'로 바꾸기도 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