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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식품 포장지에 성분-영양 표시가 의무화된 건 약 35년 전, 미 의회가 ‘영양 라벨링 및 교육법(NLEA, 1990)’을 제정한 뒤부터다. 법은 유예기간을 거쳐 94년 일부 품목부터 적용됐고,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건강보험료 자격득실확인서 96년부터 유사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했다. 2차대전 이후 동결 건조와 농축, 보존 등 식품 가공기술이 성장했고 전자레인지 등 주방 가전제품들도 잇달아 대중화하면서 60년대 이후 가공식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됐지만, 그 전까지 소비자의 주된 식품 선택 기준은 같은 값이라면, 맛과 양이었다. 음식의 건강 기여도를 따져볼 여지조차-어쩌면 의지도-없었던 간이사업자부가가치세 셈이다.
레이철 카슨의 책 ‘침묵의 봄(1962)’ 이후 환경 이슈가 급부상하면서 건강과 (가공)식품 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늘어나긴 했다. 미 백악관은 보건-영양학계의 제안을 수용해 1969년 ‘식품 영양 건강 관계자 회의(WHC)’를 열고 가공식품의 영양 성분을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을 건의했고, 72년 식품의약국(FDA) 세곡동 보금자리주택 은 국립과학원(NAS)이 정한 권장 식이허용량(RDA) 기준에 따라 특정 제품의 열량과 단백질, 탄수화물 등의 영양 정보를 공개하는 규정을 제정해 식품업계에 권고했다. 일부 업체는 그걸 마케팅 방편으로 활용했다. 시리얼 업체 켈로그사가 국립암연구소와 함께 섬유질이 특정 암 발병 가능성을 낮춘다는 연구를 진행한 뒤 84년 섬유질 보강 시리얼을 출시한 게 그 대출기간 예다. 1988년 미국 일반외과협회가 식품 성분과 암 발병 연관성을 밝힌 ‘영양 건강보고서’를 발표했고, 이듬해 전미연구평의회(NRC)는 미국인 주요 사망 원인인 심장병과 암, 뇌졸중, 당뇨병 등이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 나트륨 등의 과도한 섭취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식단 및 건강 보고서’를 내놨다. 저 일련의 과정들이 영양성분 표시 의무화의 급식비소득공제 배경이었다. 이제 영양성분표는, FDA 역사학자 수전 주노드(Susan Junod)의 말처럼, T셔츠 등 패션 상품에도 등장하곤 하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다. 아직 상당수 인류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지만, 또 상당수는 각자의 체성분까지 따져가며 먹거리를 고르는 시대를 산다. 인류가 먹거리와의 관계에서 이룬 헤겔식 양질전화. 그 변화-격차가 시작된 것도, 빈부 격차가 본격화한 80년대부터였다.
존 로빈스(John Robbins, 1947.10.26~ 2025.6.11)의 책 ‘육식의 불편한 진실(원제는 Diet for a New America)’이 1987년 출간됐다. 가공식품뿐 아니라 미국인들이 주식처럼 먹는 육류가 건강을 해치고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원흉이라는 요지의 책. 50페이지가 넘는 참고 문헌에 근거해 저자는 공장식 축산으로 식용 가축이 얼마나 끔찍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잔인하게 도살돼 항생제 등 유해 약물에 절여진 채 식탁에 오르는지, 또 그 과정에서 지구 환경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훼손되는지 등을 선구적이고도 충격적으로 기술했다. “이 동물들의 고기를 먹는다는 건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질병과 함께) 그들의 삶이었던 처참한 불행을 함께 삼킨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매끼 먹어 치우는 건 영양이 아니라 악몽이다.”(책 머리말에서)
‘종 차별주의(Speciesism)’라는 논쟁적인 용어를 만들어낸 호주 윤리철학자 피터 싱어의 75년 책 ‘우리 시대의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Now)’이 공리주의적 도덕률에 근거해 인류가 식용 가축에게 가해온 차별과 착취를 고발한 책이라면, 또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92년 책 ‘육식의 종말(Beyond Beef)'이 공장식 축산(육우산업)의 환경적-경제적 지속 불가능성과 비효율성을 거시적 관점에서 고발한 책이라면, 로빈스의 책은 육식의 문제점을 형이상학(도덕)뿐 아니라 식탁-건강과 환경의 관점에서 보게 함으로써, 근년 한국의 ‘저속노화’ 열풍은 저리 가라 할 만한 파장을 일으켰다. 책은 출간 직후 100만 부 넘게 팔리며 “미국의 소고기 소비량을 18%나 격감”시켰고, 내내 채식주의자들의 ‘바이블’로, 또 수많은 환경-동물권 다큐멘터리 등의 ‘원전(原典)’으로 활용됐다.
로빈스가 글로벌 아이스크림 제국을 형성한 ‘배스킨라빈스’의 창업주 어빈 로빈스(Irvin Robbins, 1917~2008)의 외아들-후계자였다는 사실도 책에 대한 반응의 촉매가 됐다. 그는 가업, 즉 유제품 가공-영리 활동에 반발해 상속권을 포기하고 사실상 가족을 등진 인물이었다. ‘건강한 삶, 건강한 지구’를 모토로 한 비영리 식생활(채식) 환경 단체 ‘EarthSave(1988)’와 채식 교육 홍보단체 ‘Food Revolution Network(2001)’를 설립, 운영해온 동물권 옹호-채식주의 활동가 존 로빈스가 후소아마비증후군 후유증으로 최근 별세했다. 향년 77세.
2019년 무렵의 존 로빈스와 아내 디오(위 사진). 아래는 1990년 무렵의 로빈스 일가 3대. 왼쪽부터 어빈-존-오션 로빈스. facebook/ Clean Crafted Cuvee·Ocean Robbins 사진
로빈스 일가는 혈관 속에 카제인 단백질이 흐른다고 해도 될 만큼 우유-유제품과 밀접한 집안이었다. 유대계 동유럽 출신인 존의 할아버지(Aaron) 대부터 직접 소를 키워 짠 우유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았고, 할아버지를 도우며 성장한 아버지 어빈 역시 2차대전 직후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창업했다. 여동생 셜리의 남편, 즉 존의 고모부인 버턴 배스킨(Burton Baskin, 1913~1967)도 46년 패서디나에 따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어 성공했다. 로빈스와 배스킨은 53년 동전 던지기로 이름 순서(배스킨-라빈스)를 정하고 당시 운영하던 매장 8개를 합병했다. 매달 31일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취지의 ‘배스킨라빈스 31’이 그렇게 탄생했다. 어빈과 얼마 게버츠(Irma Gevurtz)의 2녀 1남 중 둘째인 존이 만 6세 되던 해였다.
87년 책 서문에 로빈스는 “나는 ‘그레이트 아메리칸 식품업계’의 심장부에서 태어나 훗날 언젠가는 세계 최대 아이스크림 회사가 된 배스킨라빈스를 물려주겠노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내가 살던 (할리우드의) 집 뒤뜰에 있는 아이스크림콘 모양의 수영장은 나를 기다리고 있던 성공의 상징이었다”고 썼다. 어린 그는 새로운 맛이 개발될 때마다 시식-평가에 참여하며 후계자로 길러졌고, 회사 아이콘이 된 시식용 스푼(pink spoon) 디자인에도 의견을 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0대 초반 무렵부터 랠프 왈도 에머슨의 글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휘트먼의 시를 탐독하며 점차 아버지와 다른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동부 명문 사립대가 아니라 서부 공립학교(UC버클리)에 진학한 것도 일종의 소극적인 반항이었다. 우유 납품 농장들을 다니며 보게 된 가축 사육 환경에도 진저리를 쳤지만, 정치-사상적 면에서도 아버지의 철학은 60년대의 존, 즉 캘리포니아 청년 정서와 빈번히 부딪쳤다. 아버지 어빈은 베트남전 반전운동과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흑인인권운동을 못마땅해하던 보수주의자였다. 다만 존은 아버지가 고용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징병을 면했다.
5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동안 휠체어에서 생활하다 요가와 운동, 식습관 개선 등으로 건강을 회복한 존이었다. 그는 69년 대학(정치철학 전공)을 졸업하자마자 디오(Deo, 본명 Annette Lynn Ainis)와 결혼, 가족과 절연한 채 자신이 꿈꾸던 반문명-자연의 삶을 찾아 캐나다 밴쿠버의 외진 섬 풀포드 하버(Fulford Harbour)로 떠났다. 거기서 방 한 칸짜리 통나무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만 15년을 거주했다. 외동아들 오션(Ocean Robbinsm, 1973~)은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히피들의 먹잇감이 돼버렸다고 생각했다”고 훗날 말했다.
오션에 따르면, 일가는 자동차도 없이 텃밭을 일구며 존이 요가와 명상 교실을 운영해 번 돈으로 매년 한 차례씩 직접 조달할 수 없는 식료품을 배송-구매해 살았다고 한다. 당시 가족의 1년 생활비는 500~1,000달러 선이었다. “케일을 하도 많이 먹어서, 부모님은 내 이름도 케일(Kale)로 지을까 했을 정도였다”고, “생활이 빠듯해서 동전 하나까지 헤아리며 살았고(…) 누군가 5달러를 계획 없이 쓰는 바람에 부모님이 다툰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오하이오주 안티오크대에서 인본주의 심리학을 전공해 76년 석사 학위를 받은 존은 오션의 취학을 위해 78년 빅토리아로 이사했다. 그는 전공을 살려 심리 치료사로, 또 육체노동자로 가족을 부양하다 84년에야 캘리포니아 샌타크루즈로 돌아왔다. 오션은 부모님이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그리워했다”고 말했지만, 그 무렵부터 존은 경험으로 얻게 된 확신을 밑천 삼아 책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과 연구에 몰두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콜먼 매카시(Coleman McCarthy)는 88년 칼럼에서 그의 책(의 영향력)을 ‘침묵의 봄’에 견주며 극찬했다. 존은 인터뷰와 강연, 방송 출연 등으로 연일 분주했고,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88년 웹사이트(EarthSave.com)를 개설했다. 80년대는 모피 반대, 동물실험 반대, 랍스터 축제 반대 등 동물권-채식주의 캠페인이 무척 사납게 전개되던 때였다. 그의 책 출간과 함께 캠페인은 최대 출력을 내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의 기원은 기원전 ‘축의 시대’에 닿아 있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 등도 윤리적 이유와 영혼 환생에 대한 믿음 등을 이유로 채식을 권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흐름은 중세 금욕주의와 근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소수에 의해 이어지다 19세기 국가별 여러 단체로 세력화했고, 1908년 ‘국제 베지테리언 연합’이란 단체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중운동으로서의 채식주의는 20세기 중반 이후 환경-건강 이슈와 결합하면서 비로소 진영을 갖췄고, 채식-육식(잡식) 갈등도 그 무렵부터 뜨거워졌다. 따라서 그 논쟁의 바탕에는 인류의 동물적 본성(본질)에서부터 영양생리학적 우열 논쟁, 환경 이슈, 고도의 도덕철학까지 포괄하는 여러 복잡한 맥락이 얽혀 있다. 그리고,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겸 작가 존 란체스터가 2014년 에세이 ‘Shut Up and Eat’에 썼듯이 “예전에는 (문화로서의) 음식이 당신의 출신지를 말해주었다면, 이제 다수에게 음식은 당신이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를 말해주는” 시대다. 즉 음식은 개인의 정체성과 정치-사회 문화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징표 중 하나다. 원리주의적 채식-육식 진영 사이에는 이념 갈등과 거의 맞먹는 깊은 골이 있다.
1980년 3월 창립한 미국의 국제 동물권단체 'PETA'가 워싱턴D.C 인근의 도살장을 겸한 닭 사육농장에서 벌인 첫 동물권 옹호 시위 장면이다. 80년을 기점으로 다양한 이슈의 수많은 동물권 운동 단체들이 우후죽순 출범했다. peta.org
존의 책에 대한 반론-반박도 적지 않았다. 음식칼럼니스트 메리언 버로스(Marian Burros)는 92년 뉴욕타임스 에세이에서 존의 주장에 대체로 동조하지만 “사실을 과장하고, 불분명한 것들(factoids)과 설들(anecdotes)을 사실과 섞는 바람에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훼손한 면이 있다”고 썼다. 월드워치 연구소 선임연구원 앨런 더닝(Alan Durning)은 미국 축산업이 숲과 산림을 훼손했다는 존의 주장을 반박했고, 미국 농업과학아카데미 임원 출신인 음식 안전성 전문가는 살충제 등 유해 물질이 채소보다 육류와 유제품에 더 농축돼 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로빈스는 자신의 메시지가 일부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그건 “한두 마디로 요약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혼선”이라고 해명했다.
사실 그(의 책)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단호한 흑백논리와 ‘음식=건강’의 단순화였다. 채식주의자 사이에도 동기, 즉 건강이냐 (동물)윤리냐를 두고 우열적 인식의 간극과 분열이 있다.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 식의 극단-우월주의는 나머지 입장들의 상대적 차이를 무시-폄하하는 경향이 있고 그럼으로써 운동의 확장성, 이 경우 육류 소비를 (당장 끊지는 못하더라도) 줄이려는 이들의 지지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곤 한다. 근년의 학계는 영양학적 면에서 채식이 절대선은 아니며, 건강을 좌우하는 요소는 음식 외에도 다양하며, 개인-연령대 간 영양학적 차이도 적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피터 싱어와 ‘종 차별주의’ 신봉자들이 동물권 침해를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빗대는 행태에도 적지 않은 반론이 있다. 예컨대 생물학적 차별과 사회문화적 차별을 동일시함으로써, 다소 비약하자면 ‘Black Lives Matters’의 자리에 ‘All Lives Matters’의 자리를 제공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존은 다수의 책을 썼고 아들 오션과 함께 여러 단체를 이끌며 국제동물권단체 ‘PETA’ 등과 연대해 말년까지 다양한 캠페인에 앞장서며 2002년 ‘행복한 젖소(happy cow)’를 홍보한 캘리포니아 낙농협회 등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다. 80년대 말 아버지 어빈과도 화해했다. 동업자 배스킨이 67년 숨진 직후 존(의 경영권 승계)을 마지막으로 설득했으나 실패한 뒤 회사를 매각한 어빈은 경영을 이어갔고, 78년 은퇴 후 당뇨 등 성인병을 앓던 중 의사의 권유로 존의 책을 읽고서야 설탕과 육류 섭취를 대폭 줄였다고 한다.
존은 2019년부터 후소아마비증후군 증상, 즉 급격히 쇠약해지고 만성 다리 통증과 함께 수면-인지 장애를 겪기 시작했다. 말년의 그는 세상을 향해 이런 글을 남겼다. "저는 음식이 고통이 아닌 영양의 원천이 되는 세상을 위해 일했습니다. 우리 건강이 지구 건강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고, 모든 생명이 소중하단 걸 모두가 아는 그런 세상. 이제 제가 들었던 횃불을 여러분에게 건넵니다." 'Food Revolution Network'는 "존은 음식 혁명뿐 아니라 정의와 사랑, 모든 생명체의 깊은 상호연대를 위해 헌신했다"고 애도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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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식품 포장지에 성분-영양 표시가 의무화된 건 약 35년 전, 미 의회가 ‘영양 라벨링 및 교육법(NLEA, 1990)’을 제정한 뒤부터다. 법은 유예기간을 거쳐 94년 일부 품목부터 적용됐고,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건강보험료 자격득실확인서 96년부터 유사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했다. 2차대전 이후 동결 건조와 농축, 보존 등 식품 가공기술이 성장했고 전자레인지 등 주방 가전제품들도 잇달아 대중화하면서 60년대 이후 가공식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됐지만, 그 전까지 소비자의 주된 식품 선택 기준은 같은 값이라면, 맛과 양이었다. 음식의 건강 기여도를 따져볼 여지조차-어쩌면 의지도-없었던 간이사업자부가가치세 셈이다.
레이철 카슨의 책 ‘침묵의 봄(1962)’ 이후 환경 이슈가 급부상하면서 건강과 (가공)식품 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늘어나긴 했다. 미 백악관은 보건-영양학계의 제안을 수용해 1969년 ‘식품 영양 건강 관계자 회의(WHC)’를 열고 가공식품의 영양 성분을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을 건의했고, 72년 식품의약국(FDA) 세곡동 보금자리주택 은 국립과학원(NAS)이 정한 권장 식이허용량(RDA) 기준에 따라 특정 제품의 열량과 단백질, 탄수화물 등의 영양 정보를 공개하는 규정을 제정해 식품업계에 권고했다. 일부 업체는 그걸 마케팅 방편으로 활용했다. 시리얼 업체 켈로그사가 국립암연구소와 함께 섬유질이 특정 암 발병 가능성을 낮춘다는 연구를 진행한 뒤 84년 섬유질 보강 시리얼을 출시한 게 그 대출기간 예다. 1988년 미국 일반외과협회가 식품 성분과 암 발병 연관성을 밝힌 ‘영양 건강보고서’를 발표했고, 이듬해 전미연구평의회(NRC)는 미국인 주요 사망 원인인 심장병과 암, 뇌졸중, 당뇨병 등이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 나트륨 등의 과도한 섭취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식단 및 건강 보고서’를 내놨다. 저 일련의 과정들이 영양성분 표시 의무화의 급식비소득공제 배경이었다. 이제 영양성분표는, FDA 역사학자 수전 주노드(Susan Junod)의 말처럼, T셔츠 등 패션 상품에도 등장하곤 하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다. 아직 상당수 인류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지만, 또 상당수는 각자의 체성분까지 따져가며 먹거리를 고르는 시대를 산다. 인류가 먹거리와의 관계에서 이룬 헤겔식 양질전화. 그 변화-격차가 시작된 것도, 빈부 격차가 본격화한 80년대부터였다.
존 로빈스(John Robbins, 1947.10.26~ 2025.6.11)의 책 ‘육식의 불편한 진실(원제는 Diet for a New America)’이 1987년 출간됐다. 가공식품뿐 아니라 미국인들이 주식처럼 먹는 육류가 건강을 해치고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원흉이라는 요지의 책. 50페이지가 넘는 참고 문헌에 근거해 저자는 공장식 축산으로 식용 가축이 얼마나 끔찍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잔인하게 도살돼 항생제 등 유해 약물에 절여진 채 식탁에 오르는지, 또 그 과정에서 지구 환경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훼손되는지 등을 선구적이고도 충격적으로 기술했다. “이 동물들의 고기를 먹는다는 건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질병과 함께) 그들의 삶이었던 처참한 불행을 함께 삼킨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매끼 먹어 치우는 건 영양이 아니라 악몽이다.”(책 머리말에서)
‘종 차별주의(Speciesism)’라는 논쟁적인 용어를 만들어낸 호주 윤리철학자 피터 싱어의 75년 책 ‘우리 시대의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Now)’이 공리주의적 도덕률에 근거해 인류가 식용 가축에게 가해온 차별과 착취를 고발한 책이라면, 또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92년 책 ‘육식의 종말(Beyond Beef)'이 공장식 축산(육우산업)의 환경적-경제적 지속 불가능성과 비효율성을 거시적 관점에서 고발한 책이라면, 로빈스의 책은 육식의 문제점을 형이상학(도덕)뿐 아니라 식탁-건강과 환경의 관점에서 보게 함으로써, 근년 한국의 ‘저속노화’ 열풍은 저리 가라 할 만한 파장을 일으켰다. 책은 출간 직후 100만 부 넘게 팔리며 “미국의 소고기 소비량을 18%나 격감”시켰고, 내내 채식주의자들의 ‘바이블’로, 또 수많은 환경-동물권 다큐멘터리 등의 ‘원전(原典)’으로 활용됐다.
로빈스가 글로벌 아이스크림 제국을 형성한 ‘배스킨라빈스’의 창업주 어빈 로빈스(Irvin Robbins, 1917~2008)의 외아들-후계자였다는 사실도 책에 대한 반응의 촉매가 됐다. 그는 가업, 즉 유제품 가공-영리 활동에 반발해 상속권을 포기하고 사실상 가족을 등진 인물이었다. ‘건강한 삶, 건강한 지구’를 모토로 한 비영리 식생활(채식) 환경 단체 ‘EarthSave(1988)’와 채식 교육 홍보단체 ‘Food Revolution Network(2001)’를 설립, 운영해온 동물권 옹호-채식주의 활동가 존 로빈스가 후소아마비증후군 후유증으로 최근 별세했다. 향년 77세.
2019년 무렵의 존 로빈스와 아내 디오(위 사진). 아래는 1990년 무렵의 로빈스 일가 3대. 왼쪽부터 어빈-존-오션 로빈스. facebook/ Clean Crafted Cuvee·Ocean Robbins 사진
로빈스 일가는 혈관 속에 카제인 단백질이 흐른다고 해도 될 만큼 우유-유제품과 밀접한 집안이었다. 유대계 동유럽 출신인 존의 할아버지(Aaron) 대부터 직접 소를 키워 짠 우유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았고, 할아버지를 도우며 성장한 아버지 어빈 역시 2차대전 직후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창업했다. 여동생 셜리의 남편, 즉 존의 고모부인 버턴 배스킨(Burton Baskin, 1913~1967)도 46년 패서디나에 따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어 성공했다. 로빈스와 배스킨은 53년 동전 던지기로 이름 순서(배스킨-라빈스)를 정하고 당시 운영하던 매장 8개를 합병했다. 매달 31일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취지의 ‘배스킨라빈스 31’이 그렇게 탄생했다. 어빈과 얼마 게버츠(Irma Gevurtz)의 2녀 1남 중 둘째인 존이 만 6세 되던 해였다.
87년 책 서문에 로빈스는 “나는 ‘그레이트 아메리칸 식품업계’의 심장부에서 태어나 훗날 언젠가는 세계 최대 아이스크림 회사가 된 배스킨라빈스를 물려주겠노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내가 살던 (할리우드의) 집 뒤뜰에 있는 아이스크림콘 모양의 수영장은 나를 기다리고 있던 성공의 상징이었다”고 썼다. 어린 그는 새로운 맛이 개발될 때마다 시식-평가에 참여하며 후계자로 길러졌고, 회사 아이콘이 된 시식용 스푼(pink spoon) 디자인에도 의견을 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0대 초반 무렵부터 랠프 왈도 에머슨의 글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휘트먼의 시를 탐독하며 점차 아버지와 다른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동부 명문 사립대가 아니라 서부 공립학교(UC버클리)에 진학한 것도 일종의 소극적인 반항이었다. 우유 납품 농장들을 다니며 보게 된 가축 사육 환경에도 진저리를 쳤지만, 정치-사상적 면에서도 아버지의 철학은 60년대의 존, 즉 캘리포니아 청년 정서와 빈번히 부딪쳤다. 아버지 어빈은 베트남전 반전운동과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흑인인권운동을 못마땅해하던 보수주의자였다. 다만 존은 아버지가 고용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징병을 면했다.
5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동안 휠체어에서 생활하다 요가와 운동, 식습관 개선 등으로 건강을 회복한 존이었다. 그는 69년 대학(정치철학 전공)을 졸업하자마자 디오(Deo, 본명 Annette Lynn Ainis)와 결혼, 가족과 절연한 채 자신이 꿈꾸던 반문명-자연의 삶을 찾아 캐나다 밴쿠버의 외진 섬 풀포드 하버(Fulford Harbour)로 떠났다. 거기서 방 한 칸짜리 통나무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만 15년을 거주했다. 외동아들 오션(Ocean Robbinsm, 1973~)은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히피들의 먹잇감이 돼버렸다고 생각했다”고 훗날 말했다.
오션에 따르면, 일가는 자동차도 없이 텃밭을 일구며 존이 요가와 명상 교실을 운영해 번 돈으로 매년 한 차례씩 직접 조달할 수 없는 식료품을 배송-구매해 살았다고 한다. 당시 가족의 1년 생활비는 500~1,000달러 선이었다. “케일을 하도 많이 먹어서, 부모님은 내 이름도 케일(Kale)로 지을까 했을 정도였다”고, “생활이 빠듯해서 동전 하나까지 헤아리며 살았고(…) 누군가 5달러를 계획 없이 쓰는 바람에 부모님이 다툰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오하이오주 안티오크대에서 인본주의 심리학을 전공해 76년 석사 학위를 받은 존은 오션의 취학을 위해 78년 빅토리아로 이사했다. 그는 전공을 살려 심리 치료사로, 또 육체노동자로 가족을 부양하다 84년에야 캘리포니아 샌타크루즈로 돌아왔다. 오션은 부모님이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그리워했다”고 말했지만, 그 무렵부터 존은 경험으로 얻게 된 확신을 밑천 삼아 책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과 연구에 몰두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콜먼 매카시(Coleman McCarthy)는 88년 칼럼에서 그의 책(의 영향력)을 ‘침묵의 봄’에 견주며 극찬했다. 존은 인터뷰와 강연, 방송 출연 등으로 연일 분주했고,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88년 웹사이트(EarthSave.com)를 개설했다. 80년대는 모피 반대, 동물실험 반대, 랍스터 축제 반대 등 동물권-채식주의 캠페인이 무척 사납게 전개되던 때였다. 그의 책 출간과 함께 캠페인은 최대 출력을 내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의 기원은 기원전 ‘축의 시대’에 닿아 있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 등도 윤리적 이유와 영혼 환생에 대한 믿음 등을 이유로 채식을 권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흐름은 중세 금욕주의와 근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소수에 의해 이어지다 19세기 국가별 여러 단체로 세력화했고, 1908년 ‘국제 베지테리언 연합’이란 단체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중운동으로서의 채식주의는 20세기 중반 이후 환경-건강 이슈와 결합하면서 비로소 진영을 갖췄고, 채식-육식(잡식) 갈등도 그 무렵부터 뜨거워졌다. 따라서 그 논쟁의 바탕에는 인류의 동물적 본성(본질)에서부터 영양생리학적 우열 논쟁, 환경 이슈, 고도의 도덕철학까지 포괄하는 여러 복잡한 맥락이 얽혀 있다. 그리고,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겸 작가 존 란체스터가 2014년 에세이 ‘Shut Up and Eat’에 썼듯이 “예전에는 (문화로서의) 음식이 당신의 출신지를 말해주었다면, 이제 다수에게 음식은 당신이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를 말해주는” 시대다. 즉 음식은 개인의 정체성과 정치-사회 문화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징표 중 하나다. 원리주의적 채식-육식 진영 사이에는 이념 갈등과 거의 맞먹는 깊은 골이 있다.
1980년 3월 창립한 미국의 국제 동물권단체 'PETA'가 워싱턴D.C 인근의 도살장을 겸한 닭 사육농장에서 벌인 첫 동물권 옹호 시위 장면이다. 80년을 기점으로 다양한 이슈의 수많은 동물권 운동 단체들이 우후죽순 출범했다. peta.org
존의 책에 대한 반론-반박도 적지 않았다. 음식칼럼니스트 메리언 버로스(Marian Burros)는 92년 뉴욕타임스 에세이에서 존의 주장에 대체로 동조하지만 “사실을 과장하고, 불분명한 것들(factoids)과 설들(anecdotes)을 사실과 섞는 바람에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훼손한 면이 있다”고 썼다. 월드워치 연구소 선임연구원 앨런 더닝(Alan Durning)은 미국 축산업이 숲과 산림을 훼손했다는 존의 주장을 반박했고, 미국 농업과학아카데미 임원 출신인 음식 안전성 전문가는 살충제 등 유해 물질이 채소보다 육류와 유제품에 더 농축돼 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로빈스는 자신의 메시지가 일부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그건 “한두 마디로 요약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혼선”이라고 해명했다.
사실 그(의 책)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단호한 흑백논리와 ‘음식=건강’의 단순화였다. 채식주의자 사이에도 동기, 즉 건강이냐 (동물)윤리냐를 두고 우열적 인식의 간극과 분열이 있다.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 식의 극단-우월주의는 나머지 입장들의 상대적 차이를 무시-폄하하는 경향이 있고 그럼으로써 운동의 확장성, 이 경우 육류 소비를 (당장 끊지는 못하더라도) 줄이려는 이들의 지지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곤 한다. 근년의 학계는 영양학적 면에서 채식이 절대선은 아니며, 건강을 좌우하는 요소는 음식 외에도 다양하며, 개인-연령대 간 영양학적 차이도 적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피터 싱어와 ‘종 차별주의’ 신봉자들이 동물권 침해를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빗대는 행태에도 적지 않은 반론이 있다. 예컨대 생물학적 차별과 사회문화적 차별을 동일시함으로써, 다소 비약하자면 ‘Black Lives Matters’의 자리에 ‘All Lives Matters’의 자리를 제공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존은 다수의 책을 썼고 아들 오션과 함께 여러 단체를 이끌며 국제동물권단체 ‘PETA’ 등과 연대해 말년까지 다양한 캠페인에 앞장서며 2002년 ‘행복한 젖소(happy cow)’를 홍보한 캘리포니아 낙농협회 등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다. 80년대 말 아버지 어빈과도 화해했다. 동업자 배스킨이 67년 숨진 직후 존(의 경영권 승계)을 마지막으로 설득했으나 실패한 뒤 회사를 매각한 어빈은 경영을 이어갔고, 78년 은퇴 후 당뇨 등 성인병을 앓던 중 의사의 권유로 존의 책을 읽고서야 설탕과 육류 섭취를 대폭 줄였다고 한다.
존은 2019년부터 후소아마비증후군 증상, 즉 급격히 쇠약해지고 만성 다리 통증과 함께 수면-인지 장애를 겪기 시작했다. 말년의 그는 세상을 향해 이런 글을 남겼다. "저는 음식이 고통이 아닌 영양의 원천이 되는 세상을 위해 일했습니다. 우리 건강이 지구 건강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고, 모든 생명이 소중하단 걸 모두가 아는 그런 세상. 이제 제가 들었던 횃불을 여러분에게 건넵니다." 'Food Revolution Network'는 "존은 음식 혁명뿐 아니라 정의와 사랑, 모든 생명체의 깊은 상호연대를 위해 헌신했다"고 애도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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